‘아이누 문화의 계승자 중에 조선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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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그세 댓글 0건 조회 25회 작성일 26-05-07 13:21본문
대구성범죄변호사 작년 출간된 『홋카이도를 여는 평화학』이라는 책을 읽다가, 석순희(石純姫) 씨가 집필한 챕터에 눈길이 머물렀다.
태평양전쟁 시기(1941~1945년. 일제는 전쟁 물자 및 노동력 확보를 위해 ‘국가총동원법’을 시행, 탄광‧토목‧건설 현장에 대대적으로 조선인을 강제동원함) 홋카이도에서 탄광 노동 등을 강요당했던 조선인 남성이 혹독한 노동을 견디다 못해 도망을 치자, 아이누(홋카이도 선주민) 사람들이 집에 숨겨주었다. 그가 돌아갈 곳이 없다고 하자, 아이누 공동체 안에서 세대를 이루어 정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조선인도, 아이누(홋카이도 선주민)도 일본의 식민지배에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던 존재였는데, 홋카이도에서는 그들이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일제로부터 착취당한 조선인과 아이누 민족의 연결
석순희 씨는 홋카이도 도마코마이(苫小牧)의 고마자와대학 내 ‘환태평양‧아이누문화연구소’에서 공동연구를 하던 때, 동료 교수로부터 “아이누 문화의 계승자 중 조선인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후에 인터뷰를 통해 강제노동으로부터 도망친 조선인을 아이누 사람이 숨겨준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도 홋카이도의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셨지만, (아버지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은 없었어요.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잘 알려진 사실이라, 오히려 금기였던 것 같습니다. 2005년경부터 아이누와 조선 양쪽의 혈통을 가진 사람들을 소개받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현재의 재일조선인의 선조가 일본으로 이주해온 경로는 ‘강제동원에 의한 것’이라는 연구가 많았지만, 홋카이도에는 그보다 더 앞선 에도시대(1603~1868년)부터 이주가 진행되고 있었다. 조선에서 조세에 불만을 가진 농민과 농촌의 만성적 피폐로 인해 민중의 봉기가 일어나, (조선 농민들의) 러시아 연해주로의 이주가 시작되었고, 그곳에서 다시 홋카이도로 이주한 것.
석 씨는 조선인의 홋카이도 이주와 관련된 자료를 도립문서관 등에서 찾았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대부분은 입으로 전해진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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