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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기 찾아온 방황의 시절,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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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ophia 댓글 0건 조회 38회 작성일 26-01-19 17:04

본문

1992년 대전아파트이사 》2월》3월》4월》5월》6월손없는날 12월에 나는 시린 옆구리를 견딜 수 없어 중화요리집 일을 그만두었다. 형에게는 새로운 사업 제안이 들어오고 있었다. 레스토랑을 하는 친구는 레스토랑을 권했다. 내가 8년 연하의 그녀에게 레스토랑 이야기를 하자 또 힘들게 식당을 할거냐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2월 12일에 형네 가족은 이사를 했다. 그날 몇 차례 1톤 이삿짐 차에 살림살이를 실어 날랐다. 첫번째 짐을 나르고 가게로 돌아오니 일수 할머니가 바닥에 두다리를 펴고 동동거리며 손으로 바닥을 치며 울고 계셨다. 내가 형에게 미리 이야기 하지 않았는지를 물었더니 할머니가 놀랄까봐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가게는 일수를 두 분에게서 썼고 그 분들은 날마다 가게에 찾아와 일수를 찍고 갔다. 일수할머니와 이야기가 잘 되어 다행이었다. 그 할머니로서는 돈을 대전아파트이사 》2월》3월》4월》5월》6월손없는날 떼이는 줄 알고 크게 놀란 것이었다. 나는 그날 저녁에 시골집으로 갔다. ​나는 2월 18일에 집에서 쌀 한가마를 가지고 여동생네 집에 가서 거실에서 잠을 잤다. 아마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여동생이 거실에 펴준 이불 속에서 잠을 잤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차에 성애가 끼어 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차를 돌리다가 다른 차의 조수석 문을 들이받고 말았다. 나는 아파트단지를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와 경비실에 사고 소식을 알렸고, 여동생네 몰래 사고를 당한 차량 소유자를 불러달라고 하였다. ​신혼인듯한 젊은 부부가 나란히 경비실에 왔다. 사고를 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하루 말미를 주면 수리비를 드리겠다고 하였다. 문짝 10만원, 공임 10만원, 도색비 10만원까지 합해서 30만원이 필요했다. 당구 잘 치는 대전아파트이사 》2월》3월》4월》5월》6월손없는날 중학교 동창생에게 30만원을 빌려준게 있어 찾아가 사정을 말하고 달라고 했더니 웬일인지 곧장 30만원을 만들어 주었다. 녀석은 몇 년 뒤에 죽고 말았다. 하여튼 급한 돈을 제때 융통해주어서 녀석에게 감사했다. ​7년 뒤에 나는 국제결혼에 필요한 전세계약서를 여동생을 통해 형의 친구의 남동생 부부에게 부탁하여 계약서를 받았고, 이듬해 매매계약을 통해 아파트 1채를 구입했다. 여동생네는 3층, 전 주인 집은 5층인 점, 인상으로 보아 내가 차 문짝을 받은 사람과 동일인물이 틀림 없었다. 이것도 인연인 것일까? 만일에 내가 사고처리하지 않고 도망갔다가 증언이나 수사 끝에 잡혔다면 무슨 망신이겠는가 싶었다. ​형수와 조카 둘은 다가동의 전셋집에서 살고, 형은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의 여관에서 자면서 근처의 골재채쥐장을 운영관리하였다. 그러다가 4월 21일(수) 대전아파트이사 》2월》3월》4월》5월》6월손없는날 새벽에 나는 형수의 전화를 받았다. 형이 새벽에 큰 교통사고를 당해 예수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는 거다. 어머니에게는 비밀로 하고 예비군훈련을 받으러 전주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어머니의 일기에는 그날 내가 전주로 훈련 받으러 갔다고 적혀 있다. ​5월 1일에 강원도 원주에 사는 큰이모의 둘째딸인 내 이종사촌 누님이 어머니(자신에게는 이모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전화기 옆에 있었고, 누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모! 이모도 알아야 할 것 같아 제가 사실대로 말씀 드려요, 희우가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지금 예수병원에 누워 있어요". 나는 망연자실해 하는 어머니에게서 전화기를 뺏어 들고 누님과 언쟁을 했다. "진우야 이모도 알아야돼" "그래도 지금 이야기 하면 어머니가 얼마나 크게 놀라겠어요. 많이 안정된 다음에 알리려고 했는데..." 이 대전아파트이사 》2월》3월》4월》5월》6월손없는날 누님은 내가 어릴 적에 10리길을 걸어 우리집에 와서 어린 나를 돌보아 주신 분이었다. 큰 이모님이 "야야 네가 가서 일하느라 아이 돌볼 틈이 없는 이모님 좀 도와주고 와라"하셔서 그 누님이 다리품을 팔아 나를 돌보러 오고가고 했다는 말을 뒤늦게 알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더랬다. ​어머니의 일기에는 "5월 1일 음력 3월 10일 토요일 비가 많이 왔다. 4월 21일 새벽에 교통사고가 났다. 나는 모르고 있었다."고 적혀 있다. 5월 17일(월)에 비가 오는 가운데 어머니는 뒷집 형님(내 당숙모님)이랑 내 차를 타고 예수병원에 입원해 있는 형을 병문안했다. 일기에는 "기분이 안좋았다. 농협에서 10만원을 찾아서 내가 1만원 쓰고 아들 진우가 9만원을 가져갔다. 상현이 천원, 윤이 천원 용돈 주고 왔다"고 대전아파트이사 》2월》3월》4월》5월》6월손없는날 적었다. 6월 3일(수)에는 집에 있는 포플러나무가 쓰러져 오전에 베어냈다. 오후에는 벼를 심었다. ​어머니는 충격이 컸는지 일기를 쓰다가 두 페이지를 건너뛰어 일기를 썼고 7월 17일 이후 12월 30일까지는 일기를 쓰지 않으셨다. 이 해에 건조장을 새로 지었고 담배농사도 짓고 있었음을 어머니의 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나는 집과 전주를 오가며 소일했고 금암동에 있는 친구 간판가게에서 생활하기도 하였다. 친구는 나더러 간판일을 배우라고 했다. 어느날 이 녀석은 내 차를 끌고 한밤중에 다방여자를 태우고 쏘다니다가 차 사고를 냈다. 커피배달하는 여자를 꼬득여 다방을 차린다며 내 돈 100만원을 빌려가더니 다방일이 어긋나자 돈만 떼어먹었다, 빈대 콧구멍에서 마늘씨 빼어먹을 놈이었다.​어느날 아침 간판가게에 물건이 들어와서 같이 있던 권씨 성을 대전아파트이사 》2월》3월》4월》5월》6월손없는날 가진 후배와 짐을 내리고 왔더니 그새 누군가 내 지갑을 훔쳐갔다. 이후 건설회사에 다닐 때 전주역 근처에 있는 텐트용품 판매점 사업자가 나를 닥달했다. 나더러 텐트를 사가고 돈을 안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권씨 녀석이 잽싸게 내 지갑을 훔쳐가서 지갑에 있던 내 주민등록증을 이용하여 텐트를 사가고 물품대금을 안낸 것으로 여겨졌다.​간판가게 사장 녀석은 내가 건설회사에 들어간다고 하자 그러면 잡부가 된다며, 간판일을 배워보라고 권했다. 나는 비전이 없어 보이는 간판일로 가지 않고 잡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간판가게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다른 착한 후배는 이후 독립하여 간판 가게를 차렸다. ​1993년 3월 5일자로 전주시 다가동에 이사하였던 형네 가족은 7월 21일자로 중화산동에 있는 거성화산아파트에 전세을 얻어 이사하였다. 대전아파트이사 》2월》3월》4월》5월》6월손없는날 이후 형수가 결단을 내려 이웃한 동의 아파트를 구입하여 다시 옮겨갔다. 형의 교통사고 보상금과 골재채취장을 정리한 돈으로 집을 장만한 것이다. 동업자들이 찾아왔지만 형수는 가족이 우선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건설회사에 입사하여 팔복동 공단 인근 주택가에서 소방도로 개설 및 하수도 공사를 하면서 새로운 일에 적응하고 있었다. 어느날 현장을 살피러 갔다가 밭으로 차가 들어가는 바람에 고생을 했다, 다행히 직장 동료가 차를 빼주었다. (내가 건설회사에 들어간 정확한 연도나 날짜는 기록에 없다. 1993년 후반에 형수와 형이 주선하여 중화요리집 앞에서 회관을 했던 종친이 연결해주셔서 건설회사 사장님을 통해 입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초겨울에 팔복동 공단과 아파트를 오간 기억이 있고 차가 눈내린 밭에 빠진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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